2008년 09월 29일
방문자, 신동일 감독, 2006

처음엔 잔잔한 일상을 다루는 영화인줄 알았는데 뒷부분으로 갈수록 분명한 주제의식을 가지고 있는 영화임을 알 수 있었다. 글의 논리구성에 비유하자면 미괄식 구성이라고 할 수 있겠다. 첫 부분은 호준(김재록 분)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흘러가다가 우연히 호준을 구하게 된 계상(강지환 분)이 등장하면서 영화는 본격적으로 전개된다.
호준은 대학에서 영화를 가르치는 강사다. 홍상수 영화에 등장하는 주인공들처럼 호준은 한국 사회의 무기력한 인텔리를 표상한다. 그는 언제나 말만 앞서며 말과 행동이 일치되지 않는 사람이다. 택시에서 부시를 지지하는 꼴통을 만나 그와 한바탕 싸움을 벌이지만 그도 사실은 누굴 뭐라고 할 처지는 아니다. 집으로 창녀를 불러 즐기다가 아이 사진에 관심을 가지는 창녀에게 욕을 하기도 하고, 계상과 2차 술자리로 노래방에 가서 도우미를 부르는 인물이다. 또한, 영화관에서 남의 자리에 앉은 주제에 직원에게 독립영화를 운운하는 뻔뻔한 놈이기도 하다. 하지만 한편으로 그는 가족을 그리워하는 약한 아버지이기도 하며, 언제 잘릴지 모르는 사회적 약자이다. 실제로 영화에서 호준은 자신을 창녀로, 학교를 포주에 비유하기도 하며, 계상과의 술자리에서는 비정규직을 위한 건배를 제안하기도 한다. 물론 내 생각엔 호준의 의식 속에서도 곧 죽어도 화이트칼라인 자신과 비정규직 노동자 사이에는 어느 정도의 간극이 있을 것이다. 적어도 비정규직을 위한 건배를 할 때만 하더라도.
독실한 기독교 신자인 계상을 만난 호준은 그와 함께 시간을 보내면서 많은 갈등을 겪는다. 오솔길을 같이 걸으며 기독교에 대한 토론을 하는 장면은 의견 대립의 절정을 나타낸다. 호준은 계상의 사회적 부조리를 외면한 관념적인 종교 믿음을 비판하고, 계상은 말만 잘하는 호준을 비판한다. 계상이 호준에게 사과하나 호준이 계상의 손을 뿌리치고 가는 혼자 걸어가는 장면에서는 두 사람의 갈등이 완전히 해소되지 못함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자신의 신념(양심적 병역거부)을 이야기하는 계상과 그에 따른 처벌을 안타까워하는 호준을 비춰주는 장면에서 두 사람의 갈등은 완전히 해소된다. 이것은 끝까지 자신의 신념을 지키는 계상의 모습이 효준을 감동시켰다고 볼 수도 있고, 양심적 병역 거부자를 기계적으로 처벌하는 사회적 부조리에 호준이 분노한다고 볼 수도 있는 것 같다(판사의 얼굴이 나오지 않고 호준의 얼굴에 법조문 읽는 소리만 들리는 장면은 양심적 병역 거부자를 처벌하는 기계적 법적용의 비인간성을 극도로 상징하는 것으로 생각된다).
재판이 끝난 얼마 후. 호준은 자신의 아들과 함께 계상을 찾아간다. 호준은 계상에게 자신이 넣어준 책을 잘 봤냐고 묻고, 계상은 자신이 준 책자를 읽어보았냐고 묻는다. 이제 서로는 서로의 생각을 이해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끝으로 호준은 계상을 꺼내주겠다는 이야기를 하고, 산에 올라가 간첩이 사용했던 장비의 은닉 장소을 나타내는 팻말을 부수고 땅에 묻어버린다. 이것은 전에 그 자리에 오줌을 싸던 소극적 대응 대신 반공 이데올로기를 적극적으로 거부하는 호준의 모습으로 읽을 수 있다. 반공 이데올로기를 적극적으로 거부하는 호준의 모습은 전쟁을 반대하는 계상의 신념과 무관하지 않다.
-그 밖에 몇 가지 영화적 장치
창녀는 정액을 닦은 휴지를 방바닥에 던져버리는 데, 그 휴지는 우연히도 신문 지상의 부시의 얼굴에 정확히 명중한다.
라면을 끓여먹던 호준은 라면 받침대로 부시의 얼굴이 나온 신문을 사용한다.
감독의 생각을 직접적으로 화면상으로 표출하고 있다.
창녀는 알고 보니 호준의 옆집에 살고 있었는데, 호준이 아들을 데리고 자신의 집으로 가던 중 창녀를 만난다. 호준은 자신이 이불 터는 것을 도와주겠다며 창녀와 이불 양끝을 맞잡고 이불을 털기 시작하는데, 호준의 아들은 그 모습을 보며 계단에서 '곰 세 마리' 노래를 부른다. 이 장면은 호준을 아빠로, 창녀를 엄마로, 호준의 아들을 애기로 비유한 것 같은데, 왜 이런 장면을 구성했는지는 잘 이해가 안 되는 대목이다.
-덧붙이는 말
처음으로 영화 리뷰를 써서 그런지 전체적으로 글이 난삽하고 정리되는 느낌이 없다. 그다지 어려운 영화는 아니었던 것 같은데 전체적인 주제의식을 완전히 파악하지는 못했다는 생각이 든다. 세부적으로 이해가 안 가는 장면도 많이 있고. 나중에 이 영화를 한 번 더 보게 된다면 조금 더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 by | 2008/09/29 00:12 | 영화평 | 트랙백 | 덧글(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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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서트 장면들에서 감독의 유머코드가 보이는 것도 인상적이더라구요. 언급하셨던 신문인서트는 정치적인 견해가 뚜렷하게 보이면서 자신의 영화를 뒷받침할 수 있는 역할을 하는 것 같아 좋았어요. 신동일 감독 두번째 작품을 보셨는지 모르겠지만 그 영화에서도 이와 비슷한 장면이 있어요. 여기서는 '한-미FTA'기사가 난 신문 위에 떡볶이를 놓고 먹는 장면이 있는데, 그 장면보고 한참을 웃었던 것 같아요. 한편으로는 그 영화에 나오는 두명의 남자가 마치 한국과 미국을 대변하는 캐릭터로 설정한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구요.
저두 두서없이 말이 길었습니다. 아무튼 글 잘 읽었구요. 저는 '방문자'였습니다. 쿡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