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02월 07일
이번 방학에 본 몇 권의 책

부제 : 프랑스의 지리학자가 본 한국의 아파트
외부인의 시선으로 본 한국의 아파트를 이야기하고 있는 책이다. 한국에서 아파트라는 상품이 큰 성공을 거둘 수 있게 된 역사적 배경을 다루는 것에서 시작해서 한국의 아파트 현실을 냉정히 평가하고 비판하는 데까지 이르고 있다. 누구나 아파트가 가지는 역기능에는 공감을 하고 있다. 또한 아파트만이 주거 공간의 전부인양 생각되는 현실이 분명 정상적인 상황은 아니다. 하지만 한국 근현대사가 가지는 정치경제적 특이성을 고려할 때 개개인의 입장에서는 아파트만이 최고의 선택이었다고 여겨진다. 잘 짜인 글의 구성력과 그녀의 열의, 전문성에는 박수를 보낼 만하나 한편으론 너무 이론적이고 이상주의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의 박사학위 논문을 보충하고 번역하여 나오게 된 책인 만큼 재미와 위트가 확실히 빠져있다는 점 또한 이 책의 매력이다.

솔직히 이 책을 읽으면서 페미니즘의 이론적 탄탄함에 감탄했다. 페미니즘이 이처럼 멋있고 근본적인 것을 다루는 학문일 줄이야. 하지만 모든 것에 대해서 설명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에 대해서도 설명하지 못한다고 했던가. 개인적인 세계관을 구성한다는 측면에서 페미니즘은 분명 한 조각의 큰 부분을 차지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또한 페미니즘은 한 사람의 시각을 크게 열어줄 수 있는 부분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저자 말대로 페미니즘은 우리 모두에게(심지어 여성에게도) 익숙하지 않은 어떤 것이다. 그 익숙하지 않은 어떤 것을 자신의 세계관 안에 깊게 새기고 살아간다는 사실 자체도 힘든 일일뿐더러 그렇게 살아감으로써 한 사람이 받아야 할 상처는 너무도 클 것이다. 저자가 가지고 있는 섬세한 감성과 약자에 대한 배려심은 소중한 것들이다. 소중한 만큼 희귀한, 갈수록 희귀해져 가는 것이 세상을 변혁할 수 있을까. 천천히라면 가능할 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마음 한 구석에서라도 말이다.
ps. 읽기 쉬운 책은 아니다. 페미니즘이 우리에게 익숙하지 않은 탓도 있지만 글 자체도 꽤나 현학적인 부분이 있다.

대한민국 어느 한 구석 안 썩은 곳이 있겠냐만은 법조계는 아마 둘째가라면 서운할 것이다. 보이지 않은 권력으로 군림했던 법률사무소 김앤장은 이제 수면 위로 어느 정도 떠올랐지만 제 2, 3의 김앤장은 계속 나올 것이다. 이 땅에 정경유착이 계속 되는 한. 신자유주의라는 듣기 좋은 허울이 자본 세력의 검은 손을 덮어주는 그 날까지.

평소에 책을 안 사보던 사람들이 책을 사야 베스트셀러가 된다. 그러다보니 베스트셀러랍시고 나온 책들에는 내용이 있을리 만무하다. 빈 껍데기 같은 내용에 예쁜 포장지를 씌우면 그만이다. 하지만 이 책처럼 아주 가끔은 좋은 책들도 베스트셀러가 되곤 한다. 이게 다 누구 덕분일거다. 대가리에 든 거 없는 국방부 얘들하고. 각설하고 암튼 저자는 명쾌한 설명과 빈틈없는 논리로 우리를 매료시킨다. 그의 해박한 경제학 지식 앞에서 냉철한 사실에 기반을 두지 않은 이념 따위는 더 이상 발붙일 곳이 없게 된다.
개인적으로 이 책을 보면서 소름이 다 돋았다. 무서운 현실 앞에 마주하고 있으면서도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나 자신을 보게 되었다고 할까. 내가 암만 똑똑한 의사되고 잘난 놈 되도 거시 경제 앞에서는 성냥 쪼가리만한 존재나 될까. 어차피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바에야 열심히 살아보려고 발버둥이라도 쳐야겠지. 암튼 요즘은 무섭다. 아직 사회에 나오지도 않았는데 밖에서 불고 있는 칼바람이 보인다. 그 칼바람 앞에서 바람막이 할 집이라도 한 채 마련할 수 있으려나. 어린 나이에 벌써 이런 걱정이나 하고 있는 내가 자꾸 싫어진다.
# by | 2009/02/07 02:12 | 책느낌 | 트랙백 | 덧글(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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